2023년을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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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시작은 너무 슬프고 한편으로는 회사라는 존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했던 사건을 겪게된 시기이다.
회사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 변화는 함께 회사의 성장을 위해 함께 치열하게 고군분투했던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내게된 것이다. 

 

경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 닥쳐온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투자시장이 얼어붙게되고 스타트업이었던 우리 회사도 그 영향 탓에 자금 조달을 하지 못했다. 꾸준히 적자를 내왔던 우리 회사는 자연스럽게 인건비라는 고정비를 줄이는 선택을 하게되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구조조정은 떠나는 구성원과 남게된 구성원 모두를 혼란스럽게했다. 

1) 살아남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운이 좋게도 회사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막 2년차로 넘어가고 아직 개발 시장에서 경쟁력이 많이 부족한 나로써는 갑작스럽게 이직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을 겪지 않은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떠나는 사람들이 더 능력있는분들인데 내가아닌 다른 동료들이 나가야한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들었고 또 이런 상황을 만든 경영진에 화가 많이 났었다.

 

우리의 제품으로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고객가치 실현을 위해 애썼던 1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되는 것만 같았다. 
대체할 수 없는 인력들을 갑작스럽게 내보내고 남은 사람들끼리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됐었다. 
이와는 별개로 설계를 잘하고 코드를 잘 짜는 코드도 중요하긴하지만 '돈 버는 코드가 짱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됐다. 

 

이렇게 불안한 와중에도 나에게는 두 가지 든든한(?) 포인트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내가 이 회사를 오게된 큰 계기였던 씨툐(=CTO)님, 두 번째는 거의 1년 가까이 호흡을 맞추며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이루었던 패스파인더 파트가 건재하다는 사실이었다. 마음 한켠에 이 두 가지가 사라지면 진짜로 이직을 준비해야할 때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력좋고 든든했던 동료들이 떠난 뒤에도 남은 인원들끼리 어떻게든 서비스는 유지보수하고 또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나갔다. 
내가 맡은 교육 서비스도 작년에 비해서 더 많은 수강생을 받을 수 있는 LMS로 전환에 성공하고 한 번에 30명 정도밖에 받지 못하던 교육생을 500명 가까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 탈바꿈했고, 운영팀에서 전담하던 일들을 자동화하여 운영팀의 리소스를 아끼는 일에 집중하였다.

 

사실 초기에는 이런저런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가끔은 머리 아프고 또 가끔은 재밌기도 한 순간들이 많았는데 언젠가부터는 매번 하던 일을 반복하는 상황이 몇달간 지속되었다. 또한 앞으로 해야할 일 조차도 다 비슷한 작업들이었다. 

 

점점 업무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물경력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있던 찰나 파트장님의 퇴사소식을 듣게되었다.
팀장님 없는 우리 파트... 당연히 걱정이 많이 되지만 팀장님도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있는 것을 직접보고 겪다보니 떠나는 순간만큼이라도 조금이라도 안심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덤덤하게 같이 커피마시고 또 점심도 먹으면서 퇴사일까지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 손흔들며 보내드렸다.

 

파트장님의 빈자리는 팀장님이 떠난 후에야 비로써 느낄 수 있었다.
스프린트가 끝나는 날 사업팀과 같이 회의에 참석해서 다음 스프린트에 할 일을 정했는데, 이제 모든 의사소통을 우리가 직접해야했었다.
작업 가능 여부, 작업 가능 일정 산출 등은 약과였고 불가능한 요구사항에 대해서 설득을 하는 과정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예는 '엑셀 기능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사항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부분을 설득하는데 나의 설득 스킬이 부족해서 애를 먹었었다.

 

그 외에도 개발자로써 성장하는데 도움이 안되는 업무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는데 개인의 성장에 도움만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히 지양해야하지만 적당히 개개인의 성취감을 얻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쉬움이 컸었다. 파트장님이 계실 때는 이런 시간을 마련해주기위해서 많이 노력해주셨고 그 결과 우리에게 조금의 정비시간(?)이 주어져서 이 시간을 통해 조금 더 코드를 다듬거나 생산성을 높이기위한 새로운 툴을 만들기위한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파트장님이 떠나신 후로 자연스럽게 이 시간이 없어졌다. 업무시간에 일부라도  개발팀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일에 기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서 구성원의 성장에는 신경쓴다고했지만 말로만 그렇게 말한다는 확신이 들었었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라도 뭔가 새로운 성장 포인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던 찰나 가장 큰 든든 요소였던 씨툐님의 퇴사 소식을 듣게되었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억장이 무너졌다. 아직 누군가를 보내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퇴사자분들한테 찾아가서 인사 잘 못드리는 편이었는데 지금 아니면 진짜 말도 못하고 떠나겠구나 싶은 마음에 아침에 불쑥 찾아가서 커피한잔 같이하자고 말씀드렸고 덕분에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니눴었다. 
"어떻게 이렇게 떠날 수가 있어요? 🥹", "가지마요... 😭" 같은 말들을 하고싶었지만 씨툐님이 맘 고생이 더 많으셨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차마 그런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슬픔을 전달하는 것 보다 지금까지 감사했던 마음들을 꼭 전달드리면서 마지막 커피챗을 마치고 씨툐님을 떠나보냈다. 

'있다 없으니까'를 절실하게 느낀 순간들이었다.

2) 이직

나의 든든 포인트가 모두 없어지면서 나는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직 준비를 하면서 처음 알게된 것이 있는데, 취준생 때는 취업 준비하는데만 전념하면 됐지만 이직은 낮에는 일을 해야하니 밤에만 이직준비를 할 수 있었고 시간만 부족한게 아니라 체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생각한 것보다 더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의 나약한 의지로는 이력서 수정을 시작하는 것 조차 쉽지가 않았고 늘 해왔던 것처럼 나를 궁지(?)에 몰아넣어서 억지로 하게만드는 방법을 찾게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평소 애청하던 개발바닥에서 이력서 경진대회를 연다는 소문을 접하고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냅따 지원해버렸다. 발등이 불이 붙으니 부족한 시간과 체력도 이겨내고 조금씩 이직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게됐다.

 

이력서 경진대회를 신청했지만 아쉽게도(?) 입사이후 이력서를 한 번도 갱신하지 않았고 또 경력직의 이력서 쓰는 법을 잘 몰라서 한참 고민하고 여러 레퍼런스를 찾는데 시간을 많이 썼었다. 어느정도 이력서 포맷을 정한 뒤로는 지라를 띄워놓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들을 모두 리스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취준 때 쓰던 이력서 포맷에 리스트 업을 한 뒤,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들만 추려내고 불필요한 것들은 삭제했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 데이터들을 정리하는데 시간을 쓰다보니 막상 이력서는 별로 다듬지 못했었고, 그 상태로 이력서 경진대회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이력서 경진대회 전날에 메일이 날아왔고.... 
대망의 이력서 경진 대회의 날이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FOzAGjqiTc0

아쉽게도 준비가 덜 된 이력서다보니 부족한 요소가 확실히 많았기에 결과적으로 공개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
마음이 쓰렸지만 존경하는 두 분의 피드백 덕분에 이력서의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지 또 추후 내가 어떤 것들을 조금 더 보강해야 이력서가 더 다채로워질 수 있을지 알게되었다.
(이 때, 아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연락 엄청 받았다. 😅  개발씬에서의 개발바닥의 위력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이력서가 어느정도 준비되었다고 생각될 때부터 조금씩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총 20곳에 넣었었고 그중 6곳에 서류 합격을 했고 5곳에 면접을 봤는데, 하나 같이 면접 경험이 좋았다.
그렇다면 1곳은 안좋았냐?라고 한다면 내가 부족해서 안좋았던 것 같다.
평소 '저기서 한번쯤은 일해보고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회사인데, 아직은 나의 실력과의 Gap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느끼게됐다. 
이 면접에서 받았던 대다수의 질문이 내가 작업했던 기능이 대규모 트래픽을 처리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와 같은 질문이었는데, 평소에 그런 고민을 크게해보지 않은터라 거의 모든 질문에 답변하지 못했었다. 
이 회사가 원하는 주니어의 기준에는 내 실력이 못미치는구나하고 느꼈고 또 많은 트래픽을 감당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게된 계기가 되었다. 

 

처음 면접봤던 회사에 비해서 뒤에 면접봤던 회사의 면접 난이도가 체감상 낮다고 느껴졌는데, 아마도 면접을 볼 때마다 꾸준히 복기한 것이 큰 도움이됐던 것 같다. 복기를 하면서 내가 답변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해 복기하고 어떻게 답변할 것인지 혹은 모르는 개념이였다면 그 내용을 추가적으로 공부해서 다음에는 답변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복기를 하는 당연한 이유지만 개인적인 팁으로는 여러 면접을 통해서 나의 이력서를 보고 면접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들을 뽑아보았는데 이 부분을 조금 더 힘줘서 확실하게 준비하고 면접장에 들어가니 면접의 초반 분위기를 잘 잡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거의 막바지에 본 물류 회사 한 곳에 최종합격하게 되었고, 물류 개발자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직을 확정짓고 퇴사 절차를 밟아 퇴사를 하고나니 입사전까지 한달 정도의 여유시간이 남았다.
이 때, 원래라면 한달 푹 쉴 예정이었으나 어머니가 큰 수술을 치르게 되셔서 병간호를 하는데 2주 정도를 보냈다.
다행히 어머니는 수술을 잘 치르셨고, 앞으로 꾸준히 관리가 필요하여 조금 더 식단에 신경쓰고 주기적으로 검진만 잘 받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끝마치고 서울에 다시 올라와서는 여자친구와 같이 속초로 (회사 일은 없지만... 리뷰어를 업무를 간간히하기 위해) 워케이션을 갔다. 속초를 이전에 당일치기로 몇시간(?) 있다 가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각잡고 4박 5일을 보내본건 처음이었는데 바다를보며 코드를 짠다는게 생각한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란 걸 느끼게됐다. (노후에는 바다 근처에서 코딩하며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3) 새로운 환경 

놀다보니 남은 2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맨날 쉬면 쉬는 것도 질린다고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나는 적성에 너무 잘 맞는건지 막상 입사일을 하루 앞둔 시점에도 더 놀고싶다는 생각만 잔뜩 들었다. 🥲

 

입사 일이 OT를 하는 날이라고했다. 
전 회사의 위치도 역삼과 강남 사이의 위치였는데, 이직한 회사도 역삼에 위치해서 출근 루틴이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 라운지에 올라가서 OT를 받고 배정된 팀의 팀원분들 그리고 그룹원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확실히 이전의 50명 남짓 있었던 스타트업에서 규모가 큰 기업으로 이직하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도 없고 또 직원끼리도 서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하니 이런 분위기가 많이 낯설었다. 하지만 라운지가 이쁘고 또 사내 카페(특징: 안쌈)가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어쨋거나 나는 딜리버리프로덕트개발2팀으로 합류하게되었다.
평소 배송 도메인을 맡아서 개발해보고싶었는데, 이렇게 배송 시스템을 담당하는 팀에 와서  많이 기뻣고 팀은 배송/관제와 권역/간선 이렇게 두가지 시스템을 담당하고있는데, 때마침 나는 원하던 배송/관제쪽을 담당하게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권역도 많이 어려워보이고 고민할 포인트가 많은 시스템이라 시간 여유가 될 때마다 코드 살펴보고하려고했는데, 아직도 그럴 여유까지는 없는 것 같다 😂)

 

내가 합류한 시점은 한참 그룹차원에서 매우 바쁜 시점이었다.
기존에는 타회사의 SaaS로 사용했던 서비스를 우리 서비스로 내재화하는 작업이 한참 진행중이었고, 곧 그랜드 런칭을 앞둔 시점이었다.
입사한지 얼마되지않아 도메인 파악하며 작은 티켓들 하나씩 맡아서하다보니 금방 런칭 시작날짜가 왔다. 아무래도 꽤 큰 시스템이다보니 한번에 다 바꾸기보다는 시스템에 조금씩 사용 영역을 확대하는 방식 (= 램프업)으로 점진적으로 시스템을 갈아끼웠다. 

 

이미 동작하고있는 큰 시스템을 교체하는 작업이라니... 
램프업 기간동안 진짜 크고 작은 이슈들이 엄청 터질거같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실상은 그리 크리티컬하지 않은 버그건들만 몇건 제보되는게 전부였다. 팀원들의 피, 땀, 노력이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어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고 이런 팀에 합류하게된게 괜히 더 뿌듯해졌었다.
덕분에 개발일하면서 야간 근무해보는 경험은 원없이 해봤다. (물론 앞으로의 개발 생활이 많이 남았으니 앞으로도 할 일이 생기겠지..?)

 

별 탈없이 신규 시스템으로 점차 운영을 확대해나갔고 100%를 찍는 날에는 간단하게 쫑파티를 했다. 
또 신규 시스템으로 완전히 탈바꿈 한 뒤에는 기존의 시스템들의 흔적(?)을 덜어내는 작업들을 하면서 새로운 우리의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내재화 작업은 끝이났다.

 

내재화 작업이라는 큰 건이 끝난 뒤부터는 운영 이슈들을 잘 대응하기 위해서 온콜담당(새벽 배송 시스템이다보니 우리 시스템은 새벽시간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다 🥲)을 돌아가며하고있고, 에러로그가 찍히거나 버그 제보가 들어올 때마다 최대한 적극적으로 확인해보면서 조금씩 더 도메인과 친숙해지고있다. 아직도 모르는 영역이 있어서 내년에는 이 부분을 좀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생각하고있다. 

 

이제 곧 입사 7개월차가 되가고있는데 지금까지 맡은 업무들도 내 성장에 도움이 많이됐던 작업들이 꽤 많았기에 내년에는 또 어떤일을 맡아서 무럭무럭 성장하게 될지기대된다. 🤩

 

4) 건강 이슈

입사한지 얼마 안되고 발이 너무 아파서 주말에 응급실에 가게됐고 그대로 입원하게됐다. 
부끄럽게도 귀족병이라는 통풍이라고하더라 🥲
또 입원하면서 알게된게 간 수치가 꽤 높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통풍도 그렇고 간수치도 그렇고 결국 다 살쪄서 그런거라서  내년에는 진짜 살 빼야지.... 😂
✨✨링피트 개시 D-1 ✨✨(작성일 12/31 기준)

 

이 외에도 어머니도 큰 수술을 치르셨고, 아버지도 부정맥으로 응급실행을 다녀오는 등...  올해 우리 가족에게 건강 이슈가 너무 많다. 
액땜이 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다들 건강관리 잘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볼 수있었으면 좋겠다. 

 

5) X (구: 트위터 🕊️)

요즘 트위터를 애용하고있는데, 처음에는 허공속의 외침 같은 느낌으로 가끔 글을 올렸는데 점점 트친들이 많아지고 
또 간간히 대화주고 받다보니 트위터를 통해서 내적 친밀감을 형성해가는 분들이 점점 늘고있다. (나만 그럴지도...? 🥹)

 

나도 생각보다 낯가림이 좀 있는 상황이다보니 커피챗을 하고싶은 마음은 늘 있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는데, 4분기에 2분의 트친분들과 커피챗을 하게되었고 그 시간이 재밌고 또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터라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은 트친분들과 커피챗을 해보고 싶다. (혹시 이글 보는 트친분들 커피챗☕️ 편하게 요청주십셔...!)

 

트위터에서 요조(트친)님과 대화를주고받은 것이 발단이되어 물리치료 스터디를 만들게되었는데, 한참 열심히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야하는 시기에 하필 건강이슈가 발생해서 생각한 것처럼 잘 운영하지는 못한 것 같다. 😂 그래도 내가 신경쓰지 못하는 동안에 요조님과 노드대장님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스터디가 유지될 수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

 

내년에는 조금 더 이 스터디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목표이고 이런 저런 컨텐츠들을 많이 생각해서 진행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있다. 
또 물리치료 스터디를 조금 더 잘 운영할 수있도록 도와줄 물리치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있는데, 내년에는 이런 시스템적인 장치를 만들어서 나를 포함한 구성원분들이 모두 (묵힌 공부들을) 물리치료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막연하게는 (취준 포함) 주니어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로 키워나가보고 싶다.

 

마무리 

올 한해는 정말 다이나믹했던 것 같다. 
내년에는 공부도 건강도... 또 네트워킹도 다 챙기는 건강과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내년에는 취준 컴퍼니 코치로써 활동하게 됐는데, 나의 미약한 경험들이 취준생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보며
(하다못해 커피셔틀이라도... 🙄) 열심히 활동해보려고한다. 
올 한해도 너무 감사한 분들이많은데 그저... 늘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내년도 치열하게 살아보시죠~!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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